네덜란드어 '약탈자'에서 유래된 '필리버스터'

국회 소수당이 장시간 토론을 통해 다수당의 입법을 합법적으로 방해하는 수단을 뜻하죠.

2016년, '필리버스터'는 47년 만에 화려하게 부활했습니다.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이 '테러방지법' 처리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에 나섰는데, 38명의 의원이 192시간 25분 동안 토론을 펼쳤습니다.

결과적으로 법안 통과를 막지는 못했지만 국회 본회의 참관자 수와 국회방송 시청률이 평소보다 몇 배 높을 정도로 큰 화제였는데요.

현 여당 대표인 정청래 대표도 11시간 39분 토론을 펼친 '필리버스터' 스타 중 한 명이었습니다.

<정청래/더불어민주당 의원(2016년 2월 27일)> "좀 눕고 싶어요 배고프고, 어제 저녁부터 안 먹었거든요"

2019년에는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이 선거법, 공수처법에 강력히 반대하며 '필리버스터'에 나섰습니다.

'지연 전술'로 199개 안건 모두 필리버스터를 신청했지만, 민주당이 '쪼개기 임시국회'로 맞불을 놔 무력화시켰습니다.

여야가 '필리버스터'를 놓고 각종 편법을 선보이는 가운데, 21대 국회부터는 범민주 계열이 180석 이상을 차지하면서 '필리버스터'가 24시간, 하루짜리 토론으로 전락했는데요.

'필리버스터'를 해봤자 '어차피 내일이면 처리될 텐데'라는 회의적 시각이 더 커진 겁니다.

이번 추석 연휴를 앞두고도 여당이 추진한 정부조직법 등 쟁점 법안 4건에 대해 국민의힘이 입법 독재라고 반발하며 4박 5일 동안 무제한 토론에 나섰지만 모두 통과됐죠.

시간 때우기용 토론, 무엇보다 듣는 사람도 없는 텅 빈 본회의장은 '필리버스터 무용론'에 더욱 힘을 실었습니다.

<문금주/더불어민주당 의원(지난달 27일)> "이렇게 몇 분이라도 계셔 주니까 서 있을 만하네요. 한 분이라도 안 계시면 저는 카메라 울렁증이 있어 가지고…"

<최형두/국민의힘 의원(지난달 26일)> "야당 의원 1명밖에 2명밖에 없었다 그렇게 지적하실 수도 있는데 앞으로 수십 건, 50건이 될지 60건이 될지 모르는 이런 무리한 입법 드라이브를…"

국회의장이 국회 방청객들에게 의원들의 빈 좌석들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민망한 장면도 계속됐습니다.

<우원식/국회의장(지난달 26일)> "여기 자리가 많이 빈 거는 의원들이 하루종일 토론이 진행되기 때문에 계속 있을 수가 없어서…"

국민의힘에서는 추석 연휴 이후 69개 비쟁점법안 모두에 '필리버스터' 카드를 검토하고 있는데요.

민주당은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정당에서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한다는, 이른바 '의무 출석법'에 군불을 때는 등 제도 손질을 벼르고 있습니다.

<김병기/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지난달 30일)> "황금같은 국민의 시간과 민생경제의 골든타임을 소모적인 필리버스터로 허비한 점은 정말 안타깝고 유감입니다."

<송언석/국민의힘 원내대표(지난달 30일)> "필리버스터 제도 자체를 변질시키는 법안을 준비한다고 합니다. 국회 내에서 소수 의견 배려 장치가 전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이번에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이 세운 17시간 12분이 우리나라 최장 토론 기록이죠. 세계 기록은 미국 상원 의원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민주당 소속 코리 부커 의원은 올해 4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25시간 5분동안 토론을 펼쳤습니다.

이렇게 미국 의회에서도 입법 저지 수단으로 '필리버스터'가 종종 활용되는데, 그 힘은 우리 국회보다 더 강력합니다.

상원의원 100명 중에 60명의 동의를 얻어야 '클로처', 토론이 종료되고, 법안을 표결할 수 있는데요.

회기가 끝나면 토론이 자동으로 끝나고 다음 회기에 곧바로 법안 표결에 들어갈 수 있는 우리 국회와는 달리, 미국에서는 회기가 끝나면 법안도 폐기돼 실질적인 '법안 저지' 효과가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소수당으로서는 '필리버스터'가 최후의 입법 저항 수단이자 사실상 유일한 수단이기도 합니다.

거대 여당과 소수 야당 사이 '필리버스터'를 둘러싼 충돌의 불씨는 항상 남아있는 셈인데요.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라는 명언처럼, 근본적으로는 협치를 되살려야 무의미한 충돌을 멈출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지금까지 여의도 풍향계였습니다.

연합뉴스TV 기사문의 및 제보 : 카톡/라인 jebo23

정주희(gee@yna.co.kr)

당신이 담은 순간이 뉴스입니다!

ⓒ연합뉴스TV,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