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폭탄에 쓰러진 차량[연합뉴스 제공][연합뉴스 제공]


시간당 115㎜, 하루 426㎜, 나흘간 794㎜. 지난 16일~20일 전례 없는 위력으로 전국을 할퀸 수마의 기록입니다. 200년에 한 번 내릴 법한 기록적인 물벼락에 20명이 넘는 사망·실종자까지 발생해 씻을 수 없는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기상청은 지난 3일 브리핑을 통해 남부지방의 장마 조기 종료를 선언했습니다. 당시 공상민 기상청 예보분석관은 "남부지방은 7월 1일경 정체전선의 영향을 벗어나면서 장마가 종료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달 16일부터 시작한 폭우는 남부지방까지 남하했고, 17일에는 광주·전남에 이어 19일에는 경남권까지 극한 호우가 휩쓸었습니다.

사실 장마가 끝난 뒤 폭우가 쏟아지는 것은 종종 있어왔습니다. 정체전선을 동반하는 장마가 아니어도 여름철은 대류 불안정이 심해서 언제든 비구름이 발달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기 때문입니다. 특히 올해 장마 초반에 '실종'이라는 말까지 나왔다가 돌연 극한 호우를 뿌리는 이례적인 모습까지 보였습니다.

이현호 공주대 대기과학과 교수는 (7월 22일 연합뉴스TV 라이브투데이 출연) "올해는 북태평양고기압의 행보가 특이했다며, 남쪽에서 서서히 확장하는 북태평양고기압이 6월 하순부터 크게 세력을 넓혔다가 7월 중순에는 오히려 수축하는 모습을 보여 장마 예측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7월 17일 레이더 영상[기상청 제공][기상청 제공]


한 가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습니다. 기상청의 장마 기준입니다. 지난 17일 극한 호우가 쏟아질 당시 레이더 영상을 보면, 북쪽 찬 공기와 남쪽 열대 공기가 충돌하는 경계에서 비구름들이 발달합니다. 성질이 다른 공기의 충돌에 따라 폭발적으로 비구름대는 중부, 남부 할 것 없이 기록적인 폭우를 퍼부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기상청이 7월 1일 남부 장마를 조기에 종료했기에 더 이상 남부지방의 비를 장맛비라고 부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분명 똑같은 원인으로 발달한 비구름을 두고 중부는 장맛비, 남부는 여름 폭우가 되면서 돌연변이 장마가 만들진 것입니다.

만약 남부의 장마 종료일이 번복되지 않는다면, 올해 중부(7월 20일 종료)와 남부의 장마는 통계가 있는 1973년 이후 가장 크게 기간 차이가 난 해로 기록됩니다.

폭우 모식도[기상청 제공][기상청 제공]


사실 장마를 정확히 예측해 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간 장마는 정체전선에 의해 오랜 시간 내리는 비로 인식돼 왔습니다. 하지만 국지성 호우, 중규모 저기압 등 다양한 현상이 수반되는 여름철에 핀셋으로 골라내듯 정체전선에 의한 장맛비를 구분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손석우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장마는 정체전선상에서 발달하는 강수보다는 더 확장된 개념으로 정체전선 주변에서 발생하는 강수로 보는 게 더 맞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가뜩이나 장마를 구분하기 어려운데, 중부와 남부를 나눠서 장마의 시작과 종료 시점을 따로 발표하는 방식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됩니다.

장마 영향 기단[기상청 장마백서][기상청 장마백서]


500년 넘게 사용해 온 장마도 기후변화를 피해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올해처럼 장마 기간에 폭염과 폭우가 번갈아 나타나는 일이 잦아지면서 기상학적인 장맛비는 매우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기상학계에서도 장마 개념의 재정립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손석우 교수는 과거 교과서 실린 "북쪽 차고 습윤한 오호츠크 기단과 남쪽 온난 습윤한 북태평양기단의 충돌의 장마는 학계에서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개념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장마 용어를 '우기'로 대체하자는 의견도 나옵니다. 장마가 끝난 뒤에도 비가 잦아졌고 강수량도 증가하는 추세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후적으로 볼 때 장마가 없었던 해는 단 한 번도 없었지만, 2차 장마라 일컬어지는 8월~9월 초에 강수가 적었던 해는 종종 나타납니다.

특히 성질이 다른 기단이 충돌하는 장마는 동아시아에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기상 현상이기 때문에 학술적 가치까지 고려한다면, 우기 도입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올해 5월에 열린 기상학회에서도 장마 개념의 재정립은 필요하지만, 우기보다는 지금의 장마 용어를 유지하자는 의견이 다수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장마 #우기 #기후변화 #재정립 #기상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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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훈(kimjh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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