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서 '촤악' 소리가 들리길래 누가 물이나 커피를 쏟은 줄 알았어요. 바닥을 보니까 거품이 나는 노란색 액체가 퍼져 있었는데… 갑자기 들린 비명 소리에 '이거 기름이구나' 싶었습니다"

지난달 31일 서울 지하철 5호선 마포역 인근에서 발생한 방화 사건 당시, A씨의 출근길은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여의도역에서 내리는 A씨는 늘 출입구가 가까운 칸을 이용했고, 그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단 하나 달랐던 건, 그날 A씨의 바로 뒤에는 누군가가 '기름통'을 들고 서 있었다는 점입니다.

A씨 뒤편에서 휘발유를 뿌리기 시작한 방화범[서울남부지검 제공][서울남부지검 제공]


당시 방화범 원모 씨의 바로 옆에 있던 A씨는 26일 연합뉴스TV와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누군가 실수한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뒤에서 '촤악' 소리가 났을 때, 물이나 커피가 쏟아진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A씨는 "바닥에 연노란색 액체가 넓게 퍼져 있었다. 뭔가 이상하긴 했지만, 바로 기름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습니다.

하지만 액체를 본 다른 사람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고, 그제서야 퍼뜩 정신이 들었습니다.

"문득 '아, 이거 기름이구나' 싶었다. 정말 단 2~3초 만에 상황이 뒤바뀌었다"고 말했습니다.

본능적으로, A씨는 앞 칸으로 내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불길이 천장까지 번진 열차 내부[서울남부지검 제공][서울남부지검 제공]


승객들이 혼비백산하며 열차 안은 금세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 임신부가 기름에 미끄러져 넘어지는 데도, 방화범이 아랑곳하지 않고 불을 댕기는 장면이 시민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이 '넘어진 임신부' 승객이 A씨를 잡았지만, 그 사실도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고 A씨는 전했습니다.

"도망치다 넘어져 무릎이 까졌는데, 아픈 줄 모를 정도"였습니다.

앞 칸으로 간신히 몸을 피한 A씨가 뒤를 돌아보자마자, 불길은 열차 천장까지 치솟았습니다.

조금 전까지 자신이 서 있던 자리였습니다.

만약 2~3초만 멍하니 있었다면, 불에 타고 있는 건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A씨는 그대로 굳어버렸습니다.

터널 안으로 지나가는 소방관[독자 제공][독자 제공]


이후 열차는 어두운 터널 한가운데에서 멈춰 섰고, A씨도 한 중년 남성의 도움으로 열차에서 내린 뒤 터널을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휴대전화 불빛에 의지해 간신히 발걸음을 옮기는 상황, 뒤쪽에서 매캐한 연기는 계속 밀려왔습니다.

저 멀리서 마포역 불빛이 보이고, 달려오는 소방관들을 마주하고서야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기로 새까매진 A씨의 손[독자 제공][독자 제공]


사건이 한 달 가까이 지난 지금, A씨는 지하철을 탈 때마다 주변을 살피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A씨는 "어쩔 수 없이 계속 지하철을 이용해야 하는데, 탈 때마다 불안감을 느낀다. 25일 공개된 CCTV 영상도 보려고 했다가 너무 떨려서 아직 못 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범죄는 절대 가볍게 다뤄져선 안 된다"며 "앞으로도 시민들이 걱정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으려면, 이번 사건에 대해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서울남부지검 '지하철 5호선 방화 사건' 전담수사팀(팀장 손상희 부장검사)은 25일 살인미수와 현존전차방화치상, 철도안전법 위반 혐의로 원 씨를 구속기소 했습니다.

검찰은 "불특정 다수의 승객이 이용하는 지하철에 다량의 휘발유를 살포한 후 불을 질러 대규모 화재를 일으키고 유독가스를 확산시키는 것은 테러에 준하는 살상행위"라며 "대피가 늦었다면 인명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고 강조했습니다.

#지하철 #5호선 #방화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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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서(ms328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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